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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은 느리게, ‘공간 민주화’는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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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

2016.12.15
Interview
한겨레, 서울&, 이인우 기자
전상현






전상현 건축가가 5일 오후 잠실 롯데빌딩을 배경으로 서울의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보존과 개발 방법, ‘공간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올해 서울의 도시건축 행정을 돌아볼 인터뷰 대상자를 고르던 중 우연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도시의 품격>. ‘인간과 공간 사이, 서울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다. 지은이는 지난해 외국 도시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도시 현실을 돌아본 책 <도시 유감>을 펴냈던 건축가 전상현(41)씨다. 그는 ‘개발 시대(박정희-전두환)에서 신개발 시대(이명박-오세훈)를 거쳐 탈개발시대(박원순)에 들어선 지금이야말로 서울이란 도시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변화를 냉철히 평가해야 할 때’라며 ‘대한민국 1호 도시 컨설턴트가 되어 우리 도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썼다. 패기만만한 젊은 건축가를 지난 8일 123층 잠실타워가 보이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도시 컨설턴트’라니, 낯선 개념이다.

“도시건축은 계획에서 건축까지, 심지어 부동산개발 분야까지 영역이 나뉘어 있다. 이런 칸막이들을 걷어내고 전체를 조망하는 통섭의 시야에서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찾자는 개념이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한국에 온 적도 있는 찰스 랜드리(68)라는 분이 있다. 전통적 의미의 건축가는 아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도시 전략 컨설턴트인데, 그가 롤 모델이다.”

도시 컨설턴트의 시각에서 박원순 시장의 도시행정을 평가해본다면?

“큰 틀에서는 진일보, 디테일에서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표현하고 싶다.”

어떤 점이 발전했다고 보나?

“전임자들과 박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거버넌스(협치 또는 협의체)에 있다. 오세훈 시장까지의 서울시 행정이 과거라면, 박 시장부터 대중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 패러다임을 시작했다. 이건 정말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개발 위주에서 처음으로 재생 담론을 일으킨 부분도 박 시장의 업적이다.”

박 시장이 도입한 총괄건축가제도나 공공건축가제도에 대한 평가도 듣고 싶다.

“도입 취지는 당연히 환영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본다. 현실의 벽 때문에 역할이나 활동 범위에 제한이 있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강남과 강북을 나눠서 강북은 역사문화 보존, 강남은 미래형 개발, 신도시 지역은 실험 정신에 초점을 맞춰 전담 건축가를 두는 방식으로 총괄건축가제도가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서울시 건축에서 최고와 최악을 꼽는다면?

“최고를 가리는 건 주제넘은 짓 같아 사양하고, 최악은 확실하게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동대문구에 있는 디디피(DDP).”

굉장히 초현실적이고 독특한 건물 아닌가?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동대문 지역의 역사 전통, 동대문운동장이라는 근대유산을 그렇게 깡그리 무시한 채, 그토록 맥락이 없는 건물을 지은 발상을 말하는 거다. 개인적으로 디디피는 한강 변에 있었다면 오히려 최고로 꼽힐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을 보니 아파트 단지 담장을 헐고 시설을 동네 주민들이 다 함께 쓰도록 하자는 주장을 펼치던데, 이상론이 아닐까?

“아파트에 온갖 부대시설을 붙이고 담장을 둘러친 다음 비싸게 팔아먹었다. 이제 그 아파트 값에서 집을 뺀 부대시설과 땅을 정부가 되사서 담장 안 공간은 공공화하고, 집값은 떨어뜨리자는 거다. 마을 공동체도 회복하고, 아파트에 돈이 묶여 있는 하우스푸어 문제도 해결하고.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아파트가 재산의 전부인 사람들한테는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지역과 사람들부터 시작해보자고 책에서 제안했다. 노후 생활을 위해 역모기지론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지 않은가.”

전상현씨는 국민대 건축학과를 나와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어번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건축 사무소 일 등을 거쳐 현재는 한 건설회사의 도시계획 파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전공이 특이하다. 우리말 번역이 있는가?

“아직 정확한 번역이 없다. 이 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전 세계에 5개 정도 있고, 국내 전공자도 나까지 4명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 졸업생들이 도시행정가나 도시 산하 연구기관, 개발도상국의 도시 관리를 컨설팅하는 국제기구 분야로 진출한다.”

본인도 서울시 등 정부에 들어가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다.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해보고 싶다.”

어떤 분야를 해보고 싶나?

“제 나이에 건방져 보일지 모르지만, 서울 강북지역 총괄 건축가나, 한강 변 경관 비전을 세우는 일이라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 공공화를 통한 도시 주거의 사회적 모델을 제시해보고 픈 욕심도 있다.”

바람직한 도시의 미래를 위해 한국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공간에 대한 권리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은 공유재인데, 우리는 소득 수준이나 소비 수준으로 갈라지고 있다. 공간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미약하다 보니, 열악한 공간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광장은 당연히 시민 모두의 공간인데, 허가를 받아야 쓸 수 있는 정부 땅이라고 여기듯이. 우리 사회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시민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건축은 조급해서는 안 되지만, ‘공간 민주화’에 대한 각성은 빠를수록 좋다.”